[그리고 단 하나의 마녀.]
" 사랑할 사람을 선택할 순 없어. "
-팔다리는 뼈마디가 얄상하게 드러났고, 표정에는 각박한 삶의 흔적들이 속속들이 남아있다. 짧게 잘랐었던 머리는 몇 년 전부터 다시 기르기 시작해서, 아래로 묶어 내린 지금 허리 아래까지 아슬하게 닿는다······. 써머 파운야드가 한여름밤 꿈의 박제였다면, 에스텔 파운야드는 변화한 세월의 방증 같은 사람이었다.
-우습게도… 졸업 후로도 반 마디가 더 컸다. 정말 끝이란 건 없는 걸까?
-오른손 검지에는 로즈와 맞췄던 얇은 실버 링과 흰 장갑, 손목에는 체인이 끊어져 팔찌로 개조한 목걸이 하나. 화상 흉터가 적나라하게 남아있는 왼손 약지에도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다. 목에는 오래 전부터 걸고 있었던ㅡ보존 마법이 걸려 있다ㅡ별자리 목걸이 하나, 또 왼쪽 어깨에서부터 팔뚝 언저리까지 닿는 돌고래 모양 타투……. 베이지색 민소매 셔츠와 갈색 투피스를 걸친 옷매무새는 단정하나 어쨌거나 죽으러 나온 사람 치고는 제법 차림새가 화려하다.
𝐒𝐮𝐦𝐦𝐞𝐫 𝐅𝐨𝐮𝐧𝐝𝐲𝐚𝐫𝐝 써머 파운야드
혼혈
키르켄
24세•여성
173cm / 51kg
영국•미국 이중국적
“별거 없어. 이 세계에는 아직 마법이 필요하거든.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것 뿐이야."
단풍나무Maple | 유니콘 털│13.5inch
유연하고 탄력 있는 지팡이,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은 뒤 은으로 도금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마침내 품에 가둬두는 것이 익숙해졌다.
𝐏𝐄𝐑𝐒𝐎𝐍𝐀𝐋
마모된 희망•직설적 친절•포기하지 않을 것들
인생을 180도 전환하는 터닝포인트 따위는 없다. 모든 불행에는 전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숱한 절망 속에서도 그가 자기 자신을 유지했음에 이상할 점은 없다.
절망 속에서도, 그의 곁을 지켜왔던 것들.
비가역적인 운명, 아주 손쉬운 사랑, 포기할 수 없는 문장, 스스로를 유일하게 구성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마녀.
마모된 희망
고저가 없고 침체된 섬처럼 가라앉은 텐션을 유지한다. 호기심은 닳아 없어졌고, 짜증은 약간 늘었지만 분노는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하지. 긍정을 지탱하던 희망이 닳아버렸기 때문이다. 하늘이 무너졌으니 땅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한때 모든 말에서 낙관과 희망을 찾아내던 삶 속에 살았던 그는 어떤 말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세상 속 기거하는 것을 괴로워했으나, 이윽고 익숙해졌다. 전부 마신 찻잔 아래 남겨진 찻잎처럼 밑바닥에 가라앉은 것, 삶의 눈부신 면들을 너무 빨리 선행해버린 탓이라 여기니 납득이 쉬웠다.
늘 그랬듯 도통 끈질기지 못하다. 행운을 유지하는 것도, 불행을 타파하는 것도.
이런 인생으로 운명이 자신을 초대했다는 것이 괘씸하지만, 또, 그렇다기엔 에스텔 파운야드는 써머 파운야드의 인생을 너무도 사랑했던 한 명의 사람을 알고 있었다······.
직설적 친절
그러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삶 속에서도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배워왔던 진실됨만큼은 잊지 않아서, 할 말을 주저하거나 돌려 말하지 않는다. 서슴없다. 거침도 없지. 에둘러 말하는 법을 잊은 사람 같이 굴었다.
물론 각별히 불만이 늘었거나 돌연히 시니컬해졌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으나, 아껴왔던 모든 것들을 소중한 상자 속에 숨겨두자 곁에는 부정과 분노만이 남게 되었다. 어스름을 가두어 버렸으니 마법 같은 언사도 자연히 사라졌다. 웃음이란 거품이 빠져나갔고, 내보일 일 없던 이름 하나가 드러났다.
어쨌거나 에스텔은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싫은건 싫다고, 좋은건 좋다고, 맞는건 맞고 아닌 건 아니라고······. 사실 이런 건 희망과 별 관련이 없다. 어떤 절망도 앗아갈 수 없었던 본질같은 것이다.
또한 잘 대해주고 싶다는 마음은 눈물로 얼룩진대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는 습관처럼 누군가의 밝고 눈부신 면이나 사랑스러운 지점들을 시선 끝으로 좇는다. 그것을 입밖으로 내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아주 오래 전부터 몸에 익었던 친절함이 남아 있다.
아주 약간의, 부러움과······. 사랑이,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
한때는 자신 또한 영위했었던 것들이 무사하기를 원하는 것. 그것이 그의 친절이다.
포기하지 않을 것들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따위가 아니다. 그래도 사랑해야 하는 것 뿐이다. 이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별 수 없이, 대단한 마음도 없이, 그래도….
마법.
또한 마법을 싫어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마저.
좋아했던 풍경과 세계,
운명,
그리고 당신까지.
𝐎𝐓𝐇𝐄𝐑𝐒
𝐄𝐬𝐭𝐞𝐥𝐥 𝐒𝐮𝐦𝐦𝐞𝐫 𝐅𝐨𝐮𝐧𝐝𝐲𝐚𝐫𝐝 에스텔 써머 파운야드
Estell | 본래 에스텔,이라고 읽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에스텔, 라- 라고 길게 발음을 빼 발음한다. 써머 파운야드라는 마법사의 존재가 일파만파 퍼지자, 대외 활동이 필요할 땐 비교적 잘 사용하지 않았던 이름을 전면에 내걸었다.
Summer | 부르는 사람이 다수 사라진 이름. 사라지거나, 죽었거나, 잊혀졌거나. 빛나던 힘을 잃었다.
Foundyard | 사랑보다 염려가 앞섰으나, 그는 결코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포기할 수 없는 하나의 이름으로 남았다.
-나는 언제까지나 파운야드로 남을 거야. 엄마… 아빠.
───────어떤 기록. 1998. 12. 31. 이전까지.
직업_ 스무살 9월, 엄마의 이름과 연인의 성을 따 지은 활동명 캐서린 그레이로 발매했던 앨범 ‘Yours Truly’가 영국과 미국 전역에서 히트를 쳤다. 다만 그는 스타덤에 오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여전히 앳된 모습 그대로의 얼굴이었기 때문에 콘서트나 라디오 출연 등의 활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얼굴을 비추지 않으니 서서히 원히트 원더 가수로 잊혀졌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노래가 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파크 애비뉴 위를 운전한다······.
생소한 이름이었으나 목소리는 해묵지 않았으니 7년을 함께한 사람이었다면 뒤돌아볼 법한 노래였을 것이다. 여전히 마법처럼 빛이 나던 어투였다.
이후로, 활동은 없었으나 아예 손을 놓지는 않았고… 앨범으로는 엮이지 못한 몇 곡을 더 썼다. 스물셋 초봄까지 각각 다른 가명을 걸고 싱글로 발매했다.
연인_ 뼈저린, 사랑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저버리고 그를 택할 수는 없었다. 영원한 꿈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토록 빛이 나던 사람을······.
좋다. 핑계다. 사랑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자신의 잘못이 뒤따라와 이제는 그 얼굴마저 쉽게 그려보지 못한다. 물에 젖었던 청회색 머리카락, 멋진 미소. 은퇴 이후 선수들을 가르치던 좋은 코치, 좋은 아들, 좋은 연인….
유언_ 그의 유산은, 런던 한가운데에 1평 남짓한 작은 묫자리 하나를 사는데 썼다. 묻을 수 있는 게 없어서 어린 시절 치던 기타를 존 대신 묻었다.
7월 4일_ 왼손 약지에 낀 결혼 반지. 그것만큼은 도무지 두고 올 수 없었다.
집_ 스물셋 11월, 존의 장례 이후 영국 런던으로 돌아왔다. 당연한 일이었고 감당할 몫이었으나 알아보는 사람들이나 종종 듣게 되는 비난, 시선 같은 것들이 넌더리가 났다. 가족을 뼈저리게 사랑하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날도 있었다. 숱한 고민 끝에 그는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이제 그 집에 써머 파운야드의 흔적은 없다. 집 뿐만이 아니다. 물결 같던 열한살 소녀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사랑하던 겨울의 풍경에서도, 바닷바람을 가르며 웃던 그 해변가에서도, 시야 어디에도······.
가족_ 더 이상 그려서는 안 되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영원히 에스텔 파운야드의 고향이다. 집이고, 또 가족일 것이다.
그리고······. _ 써머라는 ‘사람’을 아는 존재 중 기억을 지우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존의 부모님이었다. 에스텔 파운야드는 안다. 그들에게는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원망 한 번 건네지 않았지.
마법_ 필요하다. 돌려줘야만 한다. 받아들였다.
에스텔의 유일한 동기부여란 바로 저것이었다. 세계에는, 마법이 필요해. 그 진실만이 그를 살게 하고, 또 죽게 했다.
패트로누스_ 돌고래. 졸업 이후로 성공해본 적 없다. 무너져가는 건물 앞에서 그는 어떤 행복의 자락도 떠올려내지 못했다.
Circĕn
‘선택’을 강행한 것이 스물셋 겨울 즈음이었으니, 마법부의 밑으로 들어간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목적은 합일했으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의 ‘소속’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쓰고 버릴 패로, 땅에 뿌릴 거름으로 여겨진다면 자신 또한 그러지 못하리라는 법이 있는가? 마법 정부 소속 한정으로 약간의 다혈적인 면모를 보인다.
이래저래 떠들어대는 자식들에겐 이골이 났다. 이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
이곳의 소속이라 여기지 않으므로 희생자로서 얻을 수 많은 대다수의 특권을 포기ㅡ가족의 신변 안전을 제외하고ㅡ했다. 늘 두문분출하고 있는 듯 마는 듯 하니 그들 밑에 있음을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는 종종 재해 후처리를 돕고 있지만, 빈도가 뜸해 무직이라 보는 것이 옳다. 적당히 굶지 않을 정도로만 일했고 남은 시간에는 에이스와 미뤄왔던 마법 공부를 해왔다. 이제서야 배우고 싶은 마법이 생겼다는 게 우스운 일이다.
ETC.
9월 12일, 내리쬐는 한여름의 무더위가 스멀스멀 가시기 시작할 무렵 태어났다. 그날 유달리 파도는 높게 쳤고...
Clematis | 당신의 마음은 진실로 아름답다
Sapphire | 성실과 진실
-목소리는 높으나 건조한 어조 덕에 밝은 모습이 많이 묻힌다. 평이하나 힘 있게 말을 끊어내는 습관. 영국식 억양이 드문드문 묻어나지만 여전히 발음이 둥굴다.
-연주하지 않는 기타.
-무취.
-취미 전무, 저혈압과 통일성 없는 생활 습관.
-무기력증. 그런 지 좀 됐다.
L: 좋아하던 것들, 모두 그대로 좋다. 클래식 연주, 남색 파자마, 자기 가족과 친구들, 연인, 기타 기억이 나지 않아도 어쨌거나 좋아해왔던 모든 것들. 그리고, 그리고······.
H: 죽음을 입에 가볍게 담는 사람. 여전히 싫다… 앞으로도 좋아질 일 없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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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하지만 들려줄 곡 하나만큼은 남겨두고 있을게.
세기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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